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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들/세계

[세계사] 사마니드(Samanid) 제국을 알아보자?!

by 궁금한 것 가득한 넓은 세상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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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년 사마니드 왕조의 영역

사마니드 제국, 사마니안 제국, 사마니드 왕조, 사마니드 토후국(에미리트), 사마니드 등으로 불린 중세 중동의 페르시아 수니파 무슬림  제국이다.  819년에 만들어진 제국은 코라산과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을 중심으로 확장해 나갔고, 999년까지 명맥을 이어갔다. 

 

사마니드 왕조의 역사

사마니드 왕조의 이름은 8세기 이란의 귀족 사만 쿠다(Saman Khuda)에서 기인했다. 사만 쿠다는 압바스조 7대 칼리프의 호라산(Khorasan) 총독으로 역임했다. 사만 쿠다의 아들, 아사드 이븐 사만(Asad ibn Saman)은 네 아들 Nuh, 아마드 이븐 아사드(Ahmad, 819-865), Yahya, Ilyas이 있었는데, 네 아들은 반란을 저지한 공적으로 819년에 각각 사마르칸트, 페르가나, 사쉬와 우스두샤나, 헤라트의 아미르로 임명되었다. 이를 사마니드 왕조의 시작으로 본다.

아마드의 아들 나스르 1세(Nars I, 865-892)는 864년 사마니드의 아미르가 되었다. 874년 부하라 지방을 정복하기 위해 동생이었던 이스마일 사마니를 파견했다. 이스마일 사마니는 부하라를 성공적으로 토벌하고 지배했지만, 885년 세금 분배의 문제로 형이었던 나스르 1세와 갈라섰다. 둘 간의 전쟁에서 결국 이스마일 사마니가 승리하였지만, 이스마일 사마니는 칼리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나스르 1세를 계속 인정하였다. 

892년 나스르 1세가 죽은 후, 이스마일 사마니(Ismail Samani, 892-907)가 사마니드 왕조의 아미로로 등극했다. 이스마일 사마니는 압바스조의 아미르로 있었지만 사마니드 왕조의 실질적인 주권을 가져와 왕으로 군림했다. 압바스조에 선물을 보내었지만 세금은 납부하지 않았다. 

이스마일 사마니의 사후 그의 아들 아흐메드 이븐 이스마일(Ahmed ibn Ismail, 907-914)이 왕위에 올랐다. 아흐메드는 압바스의 알무크타디르 칼리프로부터 공식적으로 아미르로 인정받았다. 그는 911년 사파르 왕조를 정벌 했다. 914년 경비병에 의해 함살당했다.

아흐메드의 아들 나스르 2세(Nars II, 914-943)가 8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를 이었다. 그의 통치기에는 정세가 불안정하여 지방에서 반란이 이어졌다. 친척과 형제들도 차례차례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의 통치는 30년간 이어졌다. 나르스 2세는 943년에 그의 아들 누 1세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누 1세(Nuh I, 943-954)는 아버지 나스르2세에 대한 반란을 장악하고 왕위에 올랐다. 반란은 나르스 2세가 이스마일리즘에 대한 지원에 불만을 갖고 발생했다. 누 1세는 이스마일리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과 함께 아버지의 퇴임을 설득해서 왕위에 올랐다. 그의 통치기간에도 반란은 계속되었다. 954년 죽었다. 

954년 누 1세의 아들 압드 알 말릭 1세(Abd al-Malik I, 954-961)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부하라에서 폴로 경기를 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961년 그의 동생 만수르 1세(Mansur I, 961-976)가 왕위에 올랐다. 만수르 1세는 976년까지 통치를 이었다. 이후 만수르 1세의 아들 누 2세(Nuh II, 976-997)가 왕위에 올랐고 997년 까지 통치를 이었다. 

만수르 1세의 즉위

누 2세의  아들 만수르 2세(Mansur II, 997-999)가 왕위에 올랐으나, 반란에 의해 2년만에 왕위에서 내려왔다. 반란군들은 만수르 2세의 동생 압드 알 말릭 2세(Abd al-Malik II, 999-999)를 왕위에 올렸다. 하지만 999년 카라한 칸국의 침공을 받아 사마니드 제국은 멸망에 이른다.

이후 옥서스강 북쪽은 카라한 칸국이 남쪽은 가즈나 왕조가 점령하였다. 누 2세의 아들이자 만수르 2세와 압드 알말릭 2세의 동생, 이스마일 문타스르(Isma'il Muntasir)가 사마니드 왕조를 되살리고자 노력하였다. 일시적으로 부하라를 탈환하고 사마르칸트를 점령하기도 하였지만, 카라한 칸국에 의해 축출당했다. 도망자 생활을 하다가 결국 1005년에 처당했다. 

전쟁에 나선 이스마일 문타스르

사마니드 왕조의 영광

사마니드 왕조의 영광은 많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루다키(Rudaki), 페르도우시(Ferdowsi), 이븐시나(Ibn Sina)가 대표적인 학자들이었다. 그들이 활약했던 부하라는 당시 바그다드와 견줄 수 있는 대도시였다고 한다. 10세기 중앙아시아에서는 사마니드 은화가 광역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융성하였다.

이스마일 사마니 시기의 동전

 

스마일 사마니 영묘(부하라)

 

사마니드 왕조 시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가 있다. 이스마일 영묘는 사마니드 왕조의 가족 묘지로서 가치도 높지만, 벽돌로 만들어진 건축 양식 자체로도 뛰어나다. 또한 초기 이슬람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즈벡/부하라] 이스마일 영묘(Ismail Samani )

부하라 놀이공원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이슬람 건물,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이다. 사마니 왕실의 가족들을 모신 가족 영묘라고 한다. 규모가 작은데, 알면 알 수록 놀라운 건물이다. 9세기

avalok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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