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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들/역사4

[위키] 적산가옥(敵産家屋) 이란?! 적산 가옥이라는 말이 있다.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목조 주택들을 적산 가옥이라고 하는데, 적산(敵産) 이란, 적의 재산이라는 뜻으로, 보통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지은 건축물을 말한다. 의미상으로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양옥도 포함되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일본식 목조 가옥을 지칭한다. 광복으로부터 벌써 80년 가까이 된 이상 이런 가옥들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는 경우가 많다. 적산가옥의 역사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한국에 넘어온 일본인들은 조선을 일본화 하기 위해 일본식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전국에 일본인촌이 형성되었고, 1930년대에는 일본인촌 외에도 많은 건축물이 일본 스타일로 지어졌다. 하지만 1945년 광복과 함께 일본인들은 살던 집을 버리고 도망가거나 추방되었다.. 2023. 4. 27.
[역사] 1979년 10월 26일 10.26 사건 (박정희 대통령 피격 사건, 궁정동 사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의해 피살되었다. 1961년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뒤로 이어온 박정희의 18년간의 독재는 이 날로서 종식되었다. 10.26사건의 전개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대통령 박정희와 함께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과 당진 KBS 송신소 준공식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은 일방적으로 김재규를 제외시켰고, 관련행사는 김재규 없이 진행되었다. 행사가 종료된 후, 차지철은 김재규에게 연락하여 오후 6시 궁정동 안가로 오라는 박정희의 명령을 전했다. 김재규는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에게 박정희 암살계획을 전달하고, 김재규는 총을 숨긴 채 궁정동 모임에 참석했다. 박정희는 김재규, 차지철, 김계원 등과함께.. 2021. 10. 16.
[역사] 부마항쟁과 박정희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의 학생들이 박정희의 독재에 저항하여 "유신철폐"를 외쳤다. 이로부터 10일 지난 10월 26일, 박정희는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측근이었던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죽었고, 18년간 이어지던 독재의 막을 내렸다. 부마항쟁과 박정희의 대처 부마항쟁이 발발하자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부산으로 급히 내려갔다. 부산과 마산의 상황을 확인하고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김재규는 현황을 조사하고 바로 청와대로 돌아와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 여기에는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계원 비서실장이 동석했다. 김재규의 보고는 다음과 같았다. 제가 내려가기 전까지는 남민전이나 학생이 주축이 된 데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지에서 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160명을 연행했는데 16명이 학생이고 나머지는 다 일.. 2021. 10. 16.
[역사] 부마민주항쟁이란?! 1979년 10월 16일 부산과 마산에서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박정희의 독재에 맞서 "유신철폐"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고, 이는 일반시민들에게 확산되었다. 박정희는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부마항쟁의 배경 1978년 12월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는 시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선거였다. 그럼에도 민주화에 동참하는 의석이 늘어났고, 정부는 민주인사에 대한 연행과 투옥 등 탄압을 강화하였다. 10월 4일 집권당인 공화당은 야당의 김영삼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했다. 이는 야당 국회의원 전원 의원직 사퇴로 이어졌고, 부마항쟁이 시작되었다. 부마항쟁의 전개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 5,000여명이 교내에서 시위를 시작하였고, 저녁에 시내로 진출했다. 1979년 .. 202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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