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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들/세계

[일본] 야스쿠니신사 왜 참배하나?!

by 궁금한 것 가득한 넓은 세상 202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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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총리에 오른 기시다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헌납했다. 예로부터 일본 총리들과 정치인들은 야스쿠니신사에 왜 이렇게 참배를 못해 안달인 것일까?!

야스쿠니신사 ⓒ 위키피디아 (Wiiii, CC BY-SA 1.0)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야스쿠니 신사

1869년 메이지 천황에 의해 도쿄 쇼콘자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에도 막부 말기에 개국에 반대하는 사무라이들 탄압한 사건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877년 세이난 전쟁 후에 새로 약 7천명의 사람들이 합사되었다. 1879년 메이지 천황은 '야스쿠니 신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명명하였다. 

1900년대를 전후로 일본 제국이 점차 확장을 하면서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을 도운 아이누인들, 오키나와인들, 한국인들이 봉안되기 시작했다. 메이지 천황은 대만인들은 합사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제국이 쇄락해 가며 대만인들을 징집할 필요가 생기면서 대만인들도 합사하였다.

 전쟁의 도구로서의 야스쿠니 신사

일본의 군부는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령하는 것을 국가 행사로 만들었다. 이 도구로 야스쿠니 신사가 사용되었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는 사람들의 이름은 관영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누가 합사되는지 알수 있었다. 이는 1944년 4월까지 이어졌다. 전쟁 속에서 야스쿠니신사는 천황가에 대한 충성의 상징이되었다. 전쟁에서 죽어 야스쿠니에 합사된다는 것이 명예로운 죽음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전쟁 막바지에는 죽음을 앞둔 자살공격에 앞서 '야스쿠니에서 다시보자'라는 인삿말이 유행했다. 

버마를 점령한 일본군 ⓒ 위키피디아(Public)

 

 패전 후의 야스쿠니 신사

1945년 일본이 항복을 한 후, 야스쿠니신사의 위세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1946년 종교와 권력이 분리되면서 야스쿠니 신사는 민간 법인으로 바뀌었다. 연합군 군대는 야스쿠니신사를 태우려고도 하였지만, 로마 교황청의 만류로 살아남게되었다. 

1956년 야스쿠니신사는 신사에 합사된 전범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였고, 전쟁이 끝나도 합사되지 않았던 전사자들이 1959년에 모두 합사되었다. 1958년까지 야스쿠니신사에는 전범들이 없었으나, 일본이 점차 자치권을 되찾으면서 하나 둘 전범들을 합사하기 시작했다. 1978년에는 처음으로 A급 전범들이 합사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은 비밀리에 이루어졌기에 이 사실을 늦게 알게된 히로히토 천황은 유감을 표시하고 단 한번도 참배를 하지 않았다.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 위키피디아 (Public)

 

 전범들과 전쟁 피해국들의 반발

야스쿠니 신사에는 1000여명의 B, C급 전범들과 14명의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다. A급 전범은 일본 40대 총리인 도조 히데키, 버마의 도살자라고 불리는 기무라 헤이타로,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 등이 있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하여 일본의 총리들은 꾸준히 참배를 해 오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 극우와 보수세력들의 지지를 위해서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입지가 어려울 때 참배를 하는 경향이 강하다. 

 참고 자료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왜 그들은 야스쿠니를 참배하나, 2014.04.28. 주간동아
日 기시다, 야스쿠니에 공물 봉납..아베·스가는 직접 참배, 2021.10.1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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