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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들/역사

[역사] 1979년 10월 26일 10.26 사건 (박정희 대통령 피격 사건, 궁정동 사건)

by 궁금한 것 가득한 넓은 세상 2021.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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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의해 피살되었다. 1961년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뒤로 이어온 박정희의 18년간의 독재는 이 날로서 종식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 Wegmann, Ludwig(위키피디아) CC BY SA 3.0

 

 10.26사건의 전개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대통령 박정희와 함께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과 당진 KBS 송신소 준공식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은 일방적으로 김재규를 제외시켰고, 관련행사는 김재규 없이 진행되었다. 행사가 종료된 후, 차지철은 김재규에게 연락하여 오후 6시 궁정동 안가로 오라는 박정희의 명령을 전했다.

 

김재규는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에게 박정희 암살계획을 전달하고, 김재규는 총을 숨긴 채 궁정동 모임에 참석했다. 박정희는 김재규, 차지철, 김계원 등과함께 술을 겸한 저녁식사를 했다. 박정희는 민중의 봉기에 재대로 대처를 못한다는 이유루 김재규를 질타했다. 차지철은 박정희의 말을 거들며 100~200만명 정도 죽여도 괜찮을 것이라고 하였고, 박정희는 자신이 국가원수라 발포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김재규의 발포

김재규는 잠시 밖으로 나가 발터PPK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다시 들어왔다. 저녁 7시 41분 신재순이 심수봉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중, 김재규가 권총을 꺼내 차지철의 오른 손목을 맞혔다. 차지철은 화장실로 달아났다. 그리고 박정희의 가슴을 향해 쏘아 치명상을 입혔다.

 

김재규는 차지철을 쫓아 조준하여 발포하였지만 격발불량을 일으켜 고장났고, 이와 함께 정전이 발생했다. 김재규는 로비로 가 권총을 바꾸었고, 연회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심수봉과 신재순이 박정희를 부축하고 있었고, 차지철은 화장실에서 다시 나왔다. 김재규는 차지철의 복부를 향해 총을 쏘았다. 이어 박정희 앞으로 다가가 후두부에 총을 쏘았다. 

 

 10.26 사건의 정리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는 김재규 체포명령을 내렸고, 그날 밤 김재규를 체포하였다. 또한 전두환에게 철저히 조사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김재규는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쇠파이프 구타,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했다. 이어 1980년 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살인, 내란수괴미수, 내란중요임무종사미수, 증거은닉, 살인 등이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참고 자료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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