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민주화운동2

[역사] 부마항쟁과 박정희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의 학생들이 박정희의 독재에 저항하여 "유신철폐"를 외쳤다. 이로부터 10일 지난 10월 26일, 박정희는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측근이었던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죽었고, 18년간 이어지던 독재의 막을 내렸다. 부마항쟁과 박정희의 대처 부마항쟁이 발발하자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부산으로 급히 내려갔다. 부산과 마산의 상황을 확인하고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김재규는 현황을 조사하고 바로 청와대로 돌아와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 여기에는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계원 비서실장이 동석했다. 김재규의 보고는 다음과 같았다. 제가 내려가기 전까지는 남민전이나 학생이 주축이 된 데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지에서 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160명을 연행했는데 16명이 학생이고 나머지는 다 일.. 2021. 10. 16.
[역사] 부마민주항쟁이란?! 1979년 10월 16일 부산과 마산에서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박정희의 독재에 맞서 "유신철폐"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고, 이는 일반시민들에게 확산되었다. 박정희는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부마항쟁의 배경 1978년 12월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는 시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선거였다. 그럼에도 민주화에 동참하는 의석이 늘어났고, 정부는 민주인사에 대한 연행과 투옥 등 탄압을 강화하였다. 10월 4일 집권당인 공화당은 야당의 김영삼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했다. 이는 야당 국회의원 전원 의원직 사퇴로 이어졌고, 부마항쟁이 시작되었다. 부마항쟁의 전개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 5,000여명이 교내에서 시위를 시작하였고, 저녁에 시내로 진출했다. 1979년 .. 2021. 10. 1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