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유네스코가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다고 한다. 예전부터 천주교 성인으로 유명한 분이라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1. 개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선 최초의 카톨릭 신부.
천주교 박해로 인해로 순교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름.
2. 일대기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태어났다. 김대건 신부의 집안은 대대로 카톨릭 집안으로 증조부 김은조, 큰할아버지, 아버지가 카톡릭 박해로 순교했다. 1836년, 모방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7월에 서울로 데려감.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서울에서 외국어 공부를 하였으며, 12월에 사제수업을 받기위해 마카오로 이동하였다. 중국을 거쳐 걸어서 마카오로 이동하였는데, 7개월 걸렸다고 한다.
프랑스어, 라틴어, 신학, 서양철학 등 서양문물을 공부하였다. 1842년 조선과의 수교를 맺기 위한 프랑스 군함의 통역 역할로 김대건 신부가 발탁되었으나 계획이 취소되었다. 이후 다른 방법으로 입국을 모색하였으나 실패하고, 중국 길림성 소팔가자(만주교구 교우촌)로 이동해서 신학 공부를 이러갔다. 1844년 12월 부제품을 서품 받고, 페레올 주교 지시로 조선으로 입국하기 위한 북부 입국로를 모색하였다. 1845년 1월 조선으로 입국하였다.
국내에서도 페레올 주교의 지시를 받아, 선교사 거처 및 입국용 선박 마련, 선교사들을 위한 조선전도를 작성했다. 1845년 8월 중국 상하이 인근 교우촌에서 페레올 주교로 부터 조선인 첫 번째 사제를 수품하고, 8월 24일 중국 횡당 소신학교 성당에서 첫번째 미사를 하였다.
1846년 6월 5일 선교사 입국 개척을 위한 조선 지도와 편지들을 파리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에게 보내려다 적발되어 체포되었다. '혹세무민'과 '밀입국', 그리고 천주교를 믿는다는 죄명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김대건 신부의 능력을 아깝게 보았고 천주교만 버리면 방면과 함께 벼슬까지 주겠다고 하였지만 김대건 신부는 거부하였다.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용산)에서 순교하였다.
후기
김대건 신부는 천주교 박해 속에서 많은 고생을 했으며, 안타까운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일대기를 곰곰히 살펴보면 천주교나 프랑스 입장에서 성인, 위인으로 삼을 만 한데, 한국의 입장에서 평가는 의문이 남는다. 특히 지도를 만들어서 프랑스에 넘기려고 했던 것을 혹자는 '조선을 유럽 사회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하지만,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는 엄연히 제국주의 열강에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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